강태진
언론속의 강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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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칼럼] EBS의 놀라운 교육실험
[매일경제] 인사이드칼럼 2014.03.18

`침묵이 금`이던 시대는 지나갔다. 그런데 아직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해진 21세기에 우리의 교실은 침묵을 훈련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세계를 선도하는 창의인재로 주목받는 유대인들의 `말하는` 교육법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둘씩 짝을 지어 토론하며 학습하는 3500년 역사를 가진 하브루타와, 자녀의 성적보다는 질문하는 태도를 중시하는 교육법이 그것이다. 소크라테스도 문답법을 통해 제자 스스로 깨우치도록 했고 공자, 맹자도 군주나 제자의 질문에 답하는 것으로 상대를 가르쳤다. 영국의 역사철학자 콜링우드도 `정보는 지식의 육체이지만 질문은 그것의 정신`이라고 하였다.

좋은 질문 없이 좋은 답은 없으며, 질문하는 훈련 없이 좋은 질문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광복 이후 근대화 노력의 일환으로 주입식 교육이 시행되었다. 당시 교육 여건은 열악했지만 급격한 경제 발전으로 사회는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을 갖춘 인력의 대량 공급을 원했다. 주입식 교육은 짧은 시간 내에 많은 지식을 다수 학생에게 전달하는 장점이 있어, 우리나라를 산업사회로 급속하게 정착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세계 경제 순위 15위에 이른 지금 주입식 교육은 창의적 융합인재 양성을 막는 주범이 되어 버렸다.

21세기는 더 새로운 융합을 추구하며 새로움은 창의적 의문에서 시작된다. 우리 학생들은 쉴 새 없는 단순 암기와 과중한 학업으로 의문을 가질 시간적 여유가 없다. 공자는 논어에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고 했다. 생각이 빠진 지식은 세계를 선도할 지혜와 힘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정답과 오답이라는 이분법적 지식 전달도 문제다. 평가의 편의성을 위해 답을 정해 놓고 벗어난 답은 모두 오답으로 처리하다 보니, 다양한 생각은 `틀린 것`이 돼 버린다. 그러나 혁명적 발견이나 창조는 엉뚱한 의문과 우연한 과정, 실패한 경험에서 얻어지는 경우가 많다. 사과가 아래로 떨어지는 현상에 의문을 가졌기에 만유인력을 발견할 수 있었고 세균 배양 실험 중 실수로 푸른곰팡이가 들어갔기 때문에 페니실린을 만들 수 있었다. 우연한 발견을 과학사에서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고 부르는데, 이는 유연한 사고 없이는 나타날 수 없다. 정답만을 요구하고 실수나 실패를 두려워하도록 가르쳐서는 행운도 없다.

최근 EBS에서 대학생을 두 팀으로 나눠 실험한 내용이 방영되었다. 3시간 후 평가시험을 본다는 전제하에 한 팀은 칸막이가 있는 곳에서 각자 조용히 공부하고, 다른 팀은 열린 공간에서 둘씩 팀을 이뤄 토론하며 공부했다. 놀랍게도 토론하며 학습한 팀이 시험에서 거의 2배 가까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메타인지(Metacognition) 때문이었다. 메타인지란 내가 아는 것이 무엇이고, 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 내가 잘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지하는 것을 말한다. 혼자 공부하다 보면 안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말로 표현하다 보면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분명해지고 주어진 과제를 더 분명하고 정확하게 알게 되는 것이다.

혁명적 발견이나 창조는 모두 기존 질서나 지식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했다. 이러한 의문이 상대방에게 해결을 요청하게 되면 질문이 된다. 지적 호기심이 질문을 낳지만 질문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지적 호기심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결국 질문 없는 교실은 의문과 호기심, 학업에 대한 흥미와 열정이 없는 교실이다. 거기서 창조적 결과물을 얻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교실이 질문으로 활발해질 때, 자유롭게 사고하고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며 실패를 창의적 기회로 삼는 미래 융합인재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강태진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