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강태진
`남보다 뛰어나기보다 남과 다르게 되라.` 전 세계 인구 0.2%에 불과하지만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약 22%를 차지하고, 작년 노벨상 수상자 6명을 배출한 유대인의 교육철학이다.
모든 사람은 타고난 재능이 다르다는 진리를 교육에 실천한 결과 유대인은 과학, 금융, 언론, 영화 등 각 분야에서 세계적 유명 인사로 포진해 있다.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이 2만3000달러를 넘어선 지금 선진국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로 남과 다른 `창의인재 양성`이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 현실은 남보다 뛰어나기만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는 획일적인 방법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대학을 평가하며, 대학이 연구할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각 대학의 교육 이념에 맞게 학생을 선발하여 가르치고 연구할 수 없다면 창의인재는 양성될 수 없다.
자율성은 대학이 처음 만들어진 중세 이래 보장받아 온 기본권이다. 최초의 대학은 유니베르시타스(universitas)라고 하는 지식인들의 `조합` 형태여서 모든 권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달랐다. 고구려의 태학부터 조선의 성균관까지 전통적으로 우리의 고등교육기관은 국가 관리 아래 있었기에 자율성을 보장받지 못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이 된 이후에도 반공과 경제발전이라는 기치 아래 국가는 교육을 진두지휘했다.
국가 주도형 교육으로 우리 경제가 급속히 발전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국가가 교육 전반을 주도하게 된 것이 정부만이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라는 인식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최근 교육부는 전체 대학을 일정한 기준으로 평가하여 5개 등급으로 나눈 뒤 정원 감축률을 정하는 대학 구조개혁안을 발표했는데, 이것 역시 대학의 자율적 구조개혁을 신뢰하지 못하는 데서 만들어진 정책으로 보인다.
1444년 평안도에 성(城)을 쌓아 국경을 방비하려는 세종의 결정에 대해 정자제가 중지할 것을 청했다. 평안도는 기근으로 백성이 어려움에 빠져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때 세종은 이미 대신의 말을 듣고 일을 지시했는데 다른 대신의 말 때문에 바꿀 수는 없다며, 사람을 쓰는 도리는 `일을 맡겼으면 의심하지 말고, 의심하려면 맡기지 말아야 한다(任則勿疑 疑則勿任)`고 하였다. 대학도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 공정하고 열정적인 개혁에 임해야 하지만 국가도 이제는 대학의 역량을 믿어 줘야 한다.
대학은 국가와 사회를 선도하고 발전을 이끌어내는 인재 양성의 책임을 지고 있다. 창의성을 갖추고 미래를 선도하는 인재 양성은 자율적 기반에서 가능하다.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 대부분이 대학에 재정지원은 하되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재정지원을 무기로 학생 선발부터 대학교육 전반을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학의 역량이 현재 국력에 비해 세계 수준과 거리가 먼 것도 국가 주도 대학교육이 가진 한계다.
출산율 저하로 4년 후에는 고교 졸업자 수가 대학 입학 정원보다 1만명가량 많아지며 2023년에는 대입 정원이 16만명쯤 남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은 정부의 통제 없이도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고 생존하기 위해 스스로 개혁을 해야만 하는 단계에 있는 것이다.
이제는 정부가 대학의 학생 선발과 교육ㆍ연구 방향을 주도적으로 선도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재정지원이 대학에서 공정하고 적절하게 잘 활용되는지 감독ㆍ평가하는 정도로 물러나야 한다. 대학도 창의인재 양성에 대한 사명감과 자율성 확보에 따른 책임감을 가지고 자기 혁신을 이뤄야 함은 물론이다. 이러한 대학의 자율적 개혁을 정부가 신뢰하고 지원할 때 21세기를 선도하는 많은 세계적 창의인재가 우리나라에서 배출될 것이다.
강태진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