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진
언론속의 강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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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칼럼] 윤리사회로 가는 길
[매일경제] 인사이드칼럼 2013.08.06

인간은 윤리적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세상을 개선하려는 욕구와 세상을 즐기려는 욕망, 둘을 놓고 늘 갈등한다.

최근 가난한 나라의 산업현장에서 생기는 불행한 사고는 윤리적 시선으로 우리 시대를 돌아볼 것을 요구한다. 11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붕괴 사건을 계기로 베네통 자라 H&M 같은 다국적 기업들이 가난한 나라의 값싼 노동력으로 고가제품을 생산한 뒤 서방세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글로벌 생산구조와 불공정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돌이켜보면 방글라데시의 비극은 우리와 미국에서도 있었다. 1960년 부산 국제고무공장 화재로 여공 60여 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지난해 우리 산업현장에서 1800여 명이 사망했는데, 이는 국제노동기구(ILO)의 산재통계보고에서 OECD 25개국 가운데 23위로 거의 꼴찌 수준이다. 미국에서는 1911년 뉴욕 봉제공장에서 화재로 140여 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하일브로너는 "사회 발전을 위한 자본형성의 초기에는 노동자들이 불가피하게 저임금과 강제저축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가 노동집약적 산업에 집중된 것도 근면한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을 통해 자본을 축적해가는 초기 산업발전 단계에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산업화 과정에서 산업윤리의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함으로써 불행한 사고가 발생하고 인간 파괴를 겪는다는 점이다. 최근 제3세계에서 아동의 노동과 삶을 착취하는 일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다. 하루에 12시간씩 축구공을 꿰매는 아이들, 커피와 초콜릿 생산을 위해 농장에서 일하는 아이들, 다이아몬드를 캐고 내전에 동원되는 소년 등 아이들의 고통스런 삶은 이 시대의 비윤리적 상황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글로벌화한 산업은 인간의 삶을 놀랍게 성장시켰지만, 동시에 극심한 양극화와 불평등을 빚어냈다. 이에 대한 위기의식과 비판이 고조되고 있음에도 가난한 나라의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대안은 경제성장밖에 없다. 효율성과 절충된 윤리산업을 실천해야 하는 윤리산업사회의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윤리산업사회란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산업현장에서 정당한 대가를 받으며 일하고 소비자들은 재화와 서비스에 합당한 값을 지불함으로써 노동자와 소비자가 모두 인간다운 삶과 행복을 추구하는 사회다.

미국에서는 생산윤리를 중시한 공정무역운동이 커피와 카카오 등에서 시작해 의류 분야로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의류업체들이 `지속가능한 의류연합`(SAC)을 결성하고 힉지수(Higg Index)를 도입해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힉지수`란 원료에서 가공 유통 소비 폐기까지 제품의 친환경을 수치화한 것으로 최근에는 사회ㆍ노동지수를 포함시켰다. 힉지수가 우리 생활에 스며들어 광범위하게 활용된다면 제품의 전 사이클에서 환경과 생산윤리를 알리는 윤리산업지수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시장시스템 안에서 자발적 규율을 통해 윤리생산과 윤리소비가 이루어지는 공정사회의 정착이 오늘의 시대정신으로 떠오르고 있다.

초기 산업화 과정에서 불행한 일이 왕왕 있었고 산업재해가 끊이지 않지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절대다수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사는 윤리사회를 이룩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선진 윤리산업사회를 향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 고용법 같은 노동자 인권이 법률로 보장되고 사회적 약자를 위해 경제민주화와 윤리사회의 기반을 닦아왔으며 사회적 기업과 공정무역, 윤리소비운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이러한 윤리사회로의 꾸준한 변신은 우리의 문화 수준과 국가 소프트파워를 끌어올려 매력적인 나라로 만들어줄 것이다.

칸트는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고 했다. 누구나 인간다운 행복한 삶을 영위할 권리를 타고 나며, 윤리사회는 이러한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사회다. 선진 윤리산업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다시금 18세기 칸트의 저 유명한 정언명령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강태진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