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진
언론속의 강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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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칼럼] 문화예술 선진국이 되려면
[매일경제] 2011.05.10

여러 경제지표가 생활의 어려움을 부분적으로 말해주고 있긴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으면서 국민의 삶에 대한 인식이 예전과 달라져 가고 있다. 그중 삶의 가치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어떻게 하면 보다 아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거기에는 물질적 만족도를 넘어 정신적 세계의 안정과 충족에 대한 기대가 더해진다.

진정 아름다운 삶은 무엇일까? 자연이 아름다운 것은 규칙과 질서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네 삶도 질서가 있어야 아름다울 수 있다. 그 질서는 규칙을 수반하고 규칙은 수학처럼 논리가 배어 있다. 일찍이 피타고라스나 아인슈타인 같은 현인들이 `음악은 수학`이라고 단정한 바 있다. 규칙과 논리만으로 아름다움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 넉넉함이 보태져야 한다는 뜻이다.

요즘 언론에서 자주 소개되는 `타이거 맘`의 논리는 아이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켜 거친 인생을 잘 이겨내려면 기초부터 튼튼히 쌓아야 한다는 전제다. 자본주의 정신의 기초가 된 것도 마스터리 트레이닝이라고 해서 뭐라도 마스터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거기에 성취욕구가 상승작용을 일으킨 것이다.

나라의 수준이 국제적으로 한껏 달라지는 것을 우리는 지난 동계올림픽에서 쇼트트랙만이 아니라 피겨스케이팅에서도 보았다. 스키는 우리와 거리가 먼 줄로만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박태환 선수가 수영에서 세계 정상을 차지하는 것을 보고, 다양화된 운동경기의 세계적 수준을 보고 아, 우리도 이젠 선진국 반열에 서는구나 하고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체육 이전에 음악에서 세계 정상을 누리는 조수미, 신영옥 등 성악가며 장한나, 임동혁 같은 연주가들이 한두 사람이 아닌 것을 우리는 안다.

이론 기초교육은 교육대로, 그리고 세계 정상에 서기 위한 기술 연마는 또 그것대로 불굴의 투혼으로 연마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술(術)의 세계에서는 각고 어린 노력 외에는 달리 왕도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이나 미술 등 특수예술교육에서 실제 내용을 가려 보면 다른 과목의 시간과 아무런 차이가 없이 같이 취급되고 있다. 달리 말해 집중적으로 기술을 습득하는 호된 훈련이 더 보강되어야 세계 정상급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론이 더 중요한가, 아니면 기술이 더 중요한가라는 논쟁을 한다면 정답은 둘 다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 이론의 바탕 위에 기술 연마를 음악으로 치면 컨서버터리에서처럼 좀 더 연마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연상되는 것이 미국의 줄리어드 음악학교, 도쿄 예술대학, 러시아의 바가노바 발레 아카데미 같은 전문 예술학교 등이다.

불쌍하게도 우리네 아이들은 현존하는 교육제도와 규정과 지침에 따르지 않을 수 없어, 심지어 예술영재학교에서조차 학교장의 자율권도 인정하지 않고 여느 인문고등학교의 그것과 교육과정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면 언제 세계 수준의 예술가들이 많이 등장할 수 있겠는가?

예술교육을 일반교육과 동일하게 보고 음악 전공실기조차 인문교과목 중 하나로 인정하고 있는 사정은 바뀌어야 한다. 예술영재학교 상위 10%의 실기 우수자들이 유학이나 상위권 대학입시를 위해 자퇴하는 비정상적인 일까지 벌어지는 현실은 방침을 달리해 막아야 하지 않을까?

예술가의 양성, 특히 음악영재의 육성은 국민의 문화예술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고 국가의 품격을 높여 선진국으로 가는 중요한 과제다. 올림픽 게임에서 우리 선수들이 국민에게 큰 기쁨을 선사하고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여준 것은 선수 각 개인의 재능과 노력의 결실이기도 하지만,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체육 영재교육을 통해 가능성 있는 미래 꿈나무를 효과적으로 발굴하고 교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술교육에도 이런 혁신이 도입돼 피폐해진 청소년 문화를 바꾸고 우리 모두가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자.

[강태진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공과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