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진
언론속의 강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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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강태진] 서울대 이전 선거공약, 무책임하다
[국민일보] 기고 2012.10.03

후진국에서는 정치인 개인에게 투표하고 더 발전된 사회에서는 사람보다 정파나 정당에 투표하며, 선진국에서는 동성결혼 부유세 일자리창출 같은 사회적 이슈의 정책을 보고 투표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아직 정책이 아닌 포퓰리즘 공약이 국민을 현혹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서울대 폐지론이나 세종시 이전안이다.

며칠 전 정치권에서 전국 국공립대통합안과 서울대 세종시 이전안 등을 대선 공약으로 검토 중임이 알려졌다. 국립대는 이전이 쉽고 상징성이 크며 지역균형발전의 명분에도 부합해 선거공약으로서 매력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대학서열화 완화, 반값 등록금, 한국판 보스턴 등 어떤 구호를 외칠지라도 이 안들은 미래 창조적 지식사회를 이끌어 갈 글로벌 우수인재의 육성이나 국민적 동의와 실현가능성과 거리가 먼 포퓰리즘에 호소하는 정치권의 구애 메시지에 불과하다.

국공립대 통합안이나 서울대 이전안은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미래에 대한 치밀한 고민 끝에 나온 청사진이 아니다. 목전에 있는 선거의 표심을 잡기 위한 임시방편이자 미래를 담보하지 않는 무책임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의 환심을 사기 위한 이들 공약은 최대 지지세력조차 이미 잡은 ‘집토끼’로 간주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서울대는 법인화를 통해 사회적 책무를 다하며 세계 초일류 대학으로 성장해 국가의 미래가치를 창출할 역사적 책무가 있다. 구성원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목표에 접근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의 근시안적인 사고는 법인화 과정에서 서울대가 관리하던 재산의 큰 부분을 이양하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서 나온 서울대 폐지론이나 이전안은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이끌 견인차의 동력을 차단하겠다는 것이기에 더욱 당황스럽다.

관악캠퍼스 보완론은 오래전부터 다양하게 제기됐다. 현 캠퍼스는 이미 포화상태여서 대형연구시설 도입과 선진화 국제화를 위해 더 넓은 부지와 인프라 투자가 절실하다. 이에 세종시 수정안이 제기되었을 때 새로운 학문영역을 창출하고 기존 캠퍼스에서 수행 불가능한 우주항공 해양공학 융합학문 등을 위한 거대 연구시설을 세종시에 건설하는 방안이 제안된 바 있다.

이는 서울대 이전이 아니라 미래 학문영역 개척을 위한 제2 연구캠퍼스를 조성하자는 바람직한 방안이었으나 결국 세종시 수정안 폐기와 함께 묻혀버렸다. 미래의 국가핵심 과학기술과 초학제적 학문을 위한 융합캠퍼스 건설은 여전히 서울대를 국가 지식혁명을 선도할 세계적 대학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필요조건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누구의 것인가? 정부의 것도 여당, 야당의 것도 유권자의 것도 아니다. 학교의 주인은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일 뿐이다.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는 미래’는 창조적 지식기반사회다. 이 사회는 국가가 온 힘을 다해 길러낸 우수한 인재에 의해 만들어진다. 때문에 이념과 지역을 넘어 먹고 사는 문제를 극복한 나라라면, 아니 조금이라도 국제사회에서 도약을 꿈꾸는 나라라면 하나같이 미래의 인재를 키우는 교육에 집중투자하고 있다.

이 흐름에 발맞춰야 하는 지금, 교육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단지 표를 얻기 위한 당략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지역주의를 버리고 정파를 넘어서 또 정권을 이어가며 백년대계의 주춧돌을 신중하게 놓아야 한다. 서울대의 폐지나 이전에 앞서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함께 더 고민하자. 교육은, 서울대는 정치이슈도 선거이슈도 아니다.

강태진 서울대 교수 재료공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