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강태진
오랜 진통 끝에 2012년 새해와 함께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가 출범했다. 그동안 서울대 법인화의 시도는 여러 번 있었다. 멀게는 광복 직후에, 가까이는 1995년부터 시작된 국립대 법인화 논의가 그것이다.
서울대가 국내 첫 종합대학으로 출범한 1946년, 미 군정은 미국 주립대학의 지배구조를 적용한 법인 형태로 만들고자 했지만 이는 일본, 독일식 대학 모델을 지향하는 주장과의 충돌로 소위 `국대안 파동(국립대학안을 반대해 일어난 동맹휴학사건)`을 야기시켰다.
법인 서울대의 출범은 큰 기대만큼이나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앞으로 서울대는 국내 최초 국립대학법인으로 과거 대학의 사명이라 할 수 있는 교육, 연구, 사회봉사의 차원을 넘어 지식 창조, 통합, 전파, 응용의 한 차원 높은 시대적ㆍ학문적 사명을 부여받고, 지ㆍ덕ㆍ체를 온전하게 갖춘 지식인 양성을 추구하는 사람 중심의 대학이 되기 위해 도전과 변신을 꾀해야 한다.
우선 교육시스템 변화를 기대한다. 미래의 교수법은 교수 중심이 아닌 학생 중심이어야 한다. 교수도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 아닌 가르치면서 동시에 학생들로부터 배운다는 인식 아래 이를 실천할 수 있는 학습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대학교육은 교과서 중심에서 다양한 지식자원을 이용한 접근으로 변하고 있어 교수도 학생들과 함께 지식자원의 접근을 통한 공유와 배움의 인식을 가져야 한다. 또한 교수의 역할도 가르침 못지않게 코칭과 상담 역할도 중요해지고 있어 대학의 교육지원시스템도 이런 변화를 반영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한다.
서울대는 국제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하며 그 일환으로 외국 학생과 교수진이 대학 운영주체로 참여할 수 있는 획기적인 역할 확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외국에서 유학생뿐만 아니라 국내 교육시스템을 배우러 올 수 있는 지원체제가 갖추어져야 하고, 이들을 가르치며 글로벌 환경하에서 학습하는 서울대가 돼야 한다.
학제 재편을 통해 대학의 기초학문인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강화하고, 여기에 예술과 과학이 보다 자율적으로, 그리고 용이하게 융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교육시스템의 획기적 변혁을 위한 장기 재원투자 확충계획이 마련돼야 한다. 디지털 융합으로 유비쿼터스와 가상실재를 넘어 감각적 경험까지 가능해지면서 디지털 잉여의 시대적 조류를 반영한 교육 인프라 확충이 요구된다.
`법인` 서울대는 우리나라를 선진사회로 이끌 학문적ㆍ사회적 사명을 부여받고 있다. 따라서 정치 등 외풍을 막아내되 국립대학의 사회적 책무를 더 강조해야 하며 국가와 사회의 이익을 위해 필요에 따라서는 정부와 영합하고 협력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학은 늘 실재를 얼마나 알고 접근해 사회적 문제를 풀 수 있는지를 자성하며 연구에 임하고 가르쳐야 한다. 미래의 대학교육은 그 대상과 시ㆍ공간을 초월해 이뤄질 것이다. 서울대가 개방대학이 될 이유는 없지만 대학의 상아탑 경계는 완화돼야 한다.
2004년 이후 국립대 법인화 바람이 몰아친 일본은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자율성 확보와 효율적 대학 경영이라는 면에서는 성공했다고는 하나 정부 교부금 감소로 대학 교육의 질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겼고, 교원의 업무량 증가로 2006년 이후에는 학술논문 수가 줄면서 결국 국제적 경쟁력 강화라는 법인화 당초의 명분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는 국내 최초 국립대학법인으로 다른 국립대의 법인화를 위한 실험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일본 사례를 본보기로 삼아 서울대의 법인 전환을 큰 발전을 위한 도약의 계기로 만들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는 물론 범국가적으로 나아가 국제환경에서도 선택받는 서울대로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서울대 구성원들의 모습과 함께 이를 지켜보는 이들의 진심 어린 성원과 격려를 기대해본다.
[강태진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공과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