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강태진
한국연구재단 출범 1주년 기념 좌담회
인문 사회과학 공학 등 걸쳐
작년 약 2조6000억 원 지원
지원대상 선정-관리
프로그램 매니저제 정착 필요
“연구지원 관리 체계의 일원화.” “학제 간 연구의 활성화.”
이 같은 기치를 내걸고 한국학술진흥재단과 한국과학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을 통합해 설립한 한국연구재단이 26일로 출범 1주년을 맞는다.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등 학문 전 분야의 연구 지원을 총괄하는 기관으로 1년 예산은 약 2조6000억 원이다.
23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재단 출범 1주년을 기념하는 좌담회가 열렸다. 전승준 한국연구재단 전략기획홍보센터장, 박항식 교육과학기술부 기초연구정책관, 강태진 서울대 공대학장(전 한국연구재단설립위원회 위원장), 서지문 고려대 영문학과 교수(한국연구재단 인문학석학강좌 운영위원장)가 참석해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위원(한국연구재단 이사)의 사회로 지난 1년을 평가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했다.
―재단 출범 당시의 배경과 목표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면….
▽박항식=이전까지는 학술진흥재단 과학재단 등으로 연구지원사업이 분산돼 기능이 중복됐다. 특히 21세기 들어 학문 간 융합이나 학제 간 연구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연구사업 지원을 일원화, 효율화하고 신생 학문이나 융합 학문을 지원하기 위한 기구 통합이 절실했다.
―출범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
▽강태진=큰 변화 중 하나는 PM(Program Manager·프로그램 매니저)제도를 강화한 것이다. 전문성 자율성 독립성을 갖춘 전문가의 판단을 중심으로 재단을 운영하는 것이다. 어떤 연구를 지원할지 판단하고 관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어떤 연구가 한국의 미래에 필요한지를 기획하고 연구 어젠다를 선정하는 역할까지 염두에 뒀다.
▽전승준=노무현 정부 당시 과학기술 예산이 2배 가까이 늘었지만 현장에서는 체감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런 점에서 학문 현장에서 활동하면서도 권위있는 학자들이 재단에 PM으로 참여하면 현장 목소리를 재단에 전달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1년간 가장 부족했던 점은 무엇이었나.
▽강태진=PM제도가 정착되지 못했다. 역할이나 권한, 임무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 그렇다 보니 예전처럼 평가나 관리 같은 행정에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서지문=그렇게 된 이유가 공정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PM의 주관적인 평가로 연구 지원을 해야 하는데 논란을 불러일으키기 쉬울 듯하다.
▽전승준=연구사업 지원에서 가장 어려운 점이 공정성 확보다. 결국 여러 명이 한꺼번에 참여해서 논문 수 같은 양적 평가를 통해 줄을 세우는 방식을 택하게 된다. PM제도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연구자 본인의 역량이나 발전 가능성을 진단하고 지원하기 위한 제도다. 물론 왜 그렇게 지원하는지 명예를 걸고 이유를 밝히도록 해야 한다.
▽박항식=현재 모험연구사업 지원이 그런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100여 개 과제에 각 4000만 원 정도, 모두 40억 원을 지원하는데 PM이 추천하고 PM이 협의해 선정한다. 기존 학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창의적인 연구 과제에 지원하는 사업이다.
―올해 초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평가(대상 기간은 2009년 7∼12월) 결과가 ‘미흡’으로 나왔다. 인문사회 분야를 소외한다는 우려도 있다.
▽박항식=고객만족도 평가는 연구에 선정된 분을 대상으로 한다. 낮은 평가를 주신 분들을 보면 신진연구자나 학술연구교수,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가 많다. 아무래도 신진연구자에 대한 지원액이 적은 편이고 학술연구교수나 인문사회 분야의 경우 연구 지원에서 소외됐다고 느끼는 것 같다.
▽서지문=재단 통합 당시의 취지가 연구비 자체를 늘리는 거였다. 그런데 인문사회과학 쪽에서는 전체 재단 지원 규모에 비해 비중이 낮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전승준=인문사회과학의 특성상 지원사업의 규모가 작고 단기적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자연과학 분야는 국가에서 장기적인 발전 계획을 세우는 등 지속적인 지원을 해왔지만 인문사회 분야에선 그런 면이 부족했다. 현재 재단이 중심이 되어 국내외 학계 동향과 인문사회 분야의 장기적 발전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만들고 있다. 9, 10월에 최종 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다.
―앞으로 한국연구재단이 해결해야 할 과제는 무엇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서지문=재단이 노력은 하고 있으나 여전히 학자들 사이에서 한국연구재단에 대한 냉소적 시각이 있다. 미국 국립인문재단 같은 곳은 홈페이지부터 친절하고 정보가 잘 정리돼 있다. 연구지원사업 공고도 너무 촉박하다. 이런 사소한 문제부터 개선해 나가야 한다.
▽강태진=앞으로 연구자의 연구능력을 평가할 때 논문 수 같은 계량적 기준 외에도 연구자의 능력을 질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립해야 한다. 성실하게 연구했는데도 실패했다면 그 실패도 받아들여질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그래야 젊은 학자들이 창의적인 연구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전문성을 가진 PM의 역할이 중요하다. 재단이 설립 초기 의도와 달리 운영되는 측면이 있는데, 지금이 바로 조직을 점검하고 재정비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