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진
언론속의 강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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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칼럼] 평범한 연구자도 노벨상 받는다
[매일경제] 인사이트 칼럼 2011.01.25

"日 노벨상 18명 가운데 15명이 기초과학 수상자…노벨상 수상 비결은 독창적인 연구과제와 정부ㆍ대학의 끝없는 지원"

지난주 스즈키 아키라 홋카이도대학 명예교수의 노벨 화학상 수상기념 강연회에 다녀왔다. 스즈키 교수는 일본인인 네기시 에이이치 미국 퍼듀대학 교수, 리처드 헤크 델라웨어대학 교수와 함께 2010년 노벨 화학상을 공동 수상한 인물이다. 이들 연구 업적인 팔라듐 촉매를 이용한 교차 커플링(일명 스즈키 커플링)은 1979년에 개발되어 혈압 강하제와 항암제 등 신약 합성과 전자소자에 사용되는 전도성 고분자 합성에도 널리 적용되는 등 우리 일상생활을 여러모로 혁신한 기술이다.

이들 연구자는 미국 퍼듀대학에서 1979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고 허버트 브라운 박사에게 수학한 동창생으로, 특이했던 것은 이번에 수상한 기술을 당시에 특허신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편 생각하면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놓쳤다고 할 수 있겠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특허등록을 하지 않았기에 이들 기술이 세계로 널리 보급되어 연구에 촉매가 됨으로써 과학자들이 꿈꾸는 최고 명예를 얻게 된 하나의 요인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1900년대부터 현재까지 노벨상 수상자를 18명 배출하였고, 그 가운데 15명이 기초과학인 물리학과 화학 부문 수상자다. 아직까지 과학 분야 노벨상이 전무한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매우 부러운 실적이다. 이처럼 일본의 연구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스즈키 교수는 수상기념 강연에서 노벨상 수상 원동력을 다음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는 브라운 교수와 만난 것이다. 그의 저서에서 영감을 받은 스즈키는 퍼듀대학을 찾아가 브라운 밑에서 연구실 생활을 시작했다. 연구를 하려면 학교 교재에 실릴 만한 독창적 연구를 하라는 브라운 교수 조언은 스즈키 교수에게 평생 연구신조가 됐다고 한다.

둘째는 일본 정부와 홋카이도대학의 꾸준한 지원이다. 스즈키 교수 연구실은 매년 120만엔(약 1500만원)씩 조건 없는 연구 지원금을 받았다. 이로 인해 이들은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할 수 있는 독창적인 연구를 꾸준히 할 수 있었다.

이렇다 할 연구 업적이 없더라도 조급한 마음으로 다른 데 눈을 돌리지 않고 거듭되는 실패 후에 찾아오는 성공을 기다려준 정부가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세태를 따르지 않고 본인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독창적 연구를 꾸준히 할 수 있는 분위기로 앞으로도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높은 연구자가 15~16명이나 대기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은 패전 이후 과학입국을 위해 많은 투자를 해 노벨상 수상이 가능한 토양이 일찍부터 형성되었다. 스즈키 교수는 이것을 축적의 힘이라고 하였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결과다. 거기에 정부 지원은 불가결한 요인이었다.

30~40년 전 우리 상황을 되돌아보면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이 없는 것은 사실 당연한 업보다. 정부 지원이 없지 않았지만 미미하고 지엽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때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여 년간 기초과학을 위시한 국가 R&D 투자를 대폭적으로 확대하여 왔고 2012년에는 GDP 대비 5%에 해당하는 세계 최대 규모 R&D 투자를 기획하고 있다. 우리 과학자들도 그동안 흘린 땀과 노력의 결실을 맺어 국민과 사회의 기대에 부응할 때가 머지않았다.

스즈키 교수가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화려한 업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유명 인사만이 노벨상 수상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홋카이도대학 동료 교수들도 스즈키 교수 수상 소식을 듣고서야 그의 업적을 알았다고 한다. 가없는 호기심, 항상 깨어 있는 의식 속에서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관찰력과 긍정적인 자세, 끊임없는 노력, 그리고 시운이 오늘의 영광을 가져다 주었다고 한다.

이제 우리도 기초나 응용 할 것 없이 연구자 탐구력에 상응하는 장기적 안목과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큰 액수가 아니더라도 꾸준한 지원이 아쉽다.

[강태진 객원논설위원 / 서울대 공과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