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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강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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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칼럼] 국과위, 과학기술 컨트롤타워 돼야
[매일경제] 인사이트 칼럼 2010.11.02

지금 과학기술계의 가장 큰 관심사는 정부가 추진하는 `과학기술 행정체제 선진화 방안`이다. 그동안 대통령 자문을 맡아온 비상설기구인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를 강화해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국가연구개발 사업의 기획 및 종합조정권과 예산배분권을 갖게 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지난 한 달간 이를 놓고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는 것의 위헌 여부와 행정위원회의 형태가 적당한지의 문제를 놓고 과학계 일선과 여ㆍ야 간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그러나 과학선진국인 미국과 우리의 이웃 일본 역시 우리나라 국과위에 해당하는 연구개발 종합조정기구를 두고 있다. 미국의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P)는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과 긴밀한 협의를 토대로 대통령 직속 관리 예산처(OMB)가 연구개발 예산을 조정, 배분한다. 올해만도 2명의 노벨 화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은 종합과학기술회의(CSTP)가 국가 과학기술 종합전략을 짜고 기본계획을 확정하며 인력과 예산을 배분ㆍ평가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이 기구는 우리나라의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에 해당하는 문부과학성과 경제산업성을 총괄하는 범부처 기구다.

국과위가 강화되면 실질적인 범부처 기구로서 국가연구개발의 통합조정과 효율적인 추진이 가능하게 되어 그동안 과학기술계 숙원인 과학기술 컨트롤타워가 생기게 되는 셈이다. 과학기술계 29개 단체가 정부의 발표가 나오자마자 환영 성명을 발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과학기술계가 국과위 강화 방침에 환영 성명을 내고, 관련법의 국회 통과를 위해 발 벗고 나선 것은 정부 방침에 일방적인 동의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기 때문만은 아니다. 과학기술 컨트롤타워 없이 국가 연구개발을 수행해야 하는 지금의 현실이 매우 파행적이기 때문이다.

국과위 강화의 본질은 실질적으로 예산을 조정하고 배분하는 권한을 가졌느냐다. 명실상부한 국가 과학기술 컨트롤타워의 수립에 대한 여망은 지난 정부의 `과학기술 혁신본부` 체제에 대한 평가를 그 배경으로 한다. 과학기술 혁신본부는 민간 전문가의 정부 참여를 대폭 늘리고 범부처 간 소통을 시도한 획기적 행정체제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확고한 권한을 갖지 못한 채 각 부처로 분산되어 있는 과학기술 정책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수준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 부처로 나뉘어 있는 연구개발 예산권을 총괄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과학기술자들은 하나의 연구프로젝트를 추진할 때마다 주무부처와 혁신본부를 오가며 똑같은 설명을 반복해야 했다.

범부처적 예산 조정 권한이 중요한 것은 비단 연구자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자원 배분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지한 현 정부에서는 내년도 국가 연구개발 예산으로 총 14조8740억원을 배정했다. 그러나 과거 과학기술부를 축으로 진행되었던 과학기술 정책 및 행정제도의 조정기능이 분산ㆍ다원화된 현 행정 체제에서는 이 예산을 교육과학기술부와 지식경제부를 비롯해 국방부 환경부 등 18개 부처가 나누어 집행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부처 간 경쟁적 투자로 중복 가능성이 충분히 있으며 부처별로 산재해 있는 과학기술 정책의 우선순위 조정 등에서 혼선이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연구개발 예산을 아무리 많이 늘린다고 해도 과학외적인 외풍에 취약할 수밖에 없으며 과학기술 국가목표 달성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재가 그 잠재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스마트 리더십과 체계적이고 전폭적인 국가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 정부의 과학 독점에 대해 비판의 여지가 없지 않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뇌본사회(腦本社會)의 중심축이 과학기술일 수밖에 없기에 이 나라의 미래를 기약하는 국과위가 하루바삐 제 모습과 역할을 갖추기를 기대한다.

[강태진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공과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