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진
언론속의 강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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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칼럼] 미래는 보이지 않는 것이 지배한다
[국민일보] 2009.11.29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하드웨어적 기술 요소와 소프트웨어적 지식 요소가 결합된 지식기반사회가 형성됐으며 과학기술 토대를 굳건히 하고 연구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국가가 산업 경쟁력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에서도 앞서는 시대가 되었다.

이처럼 기술혁신이 경제 성장을 이끄는 핵심동력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지식재산 경쟁력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세계 각국 경제체제도 세계무역기구(WTO) 내 지식재산권(TRIPs) 협정을 계기로 지식재산권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특히 단순 제조 분야에서 국제 경쟁력이 점차 약해지고 있는 선진국들은 지식재산권을 무기로 후발개도국을 따돌리려 할 뿐만 아니라 이를 새로운 통상압력 수단으로 이용하려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잠수함 특허', '특허 괴물(patent troll)' 등 용어가 낯설지 않다. 잠수함 특허란 예전에 특허가 등록되기 전에는 출원내용을 공개하지 않던 제도를 이용하여 제3자가 상당한 투자를 한 후에야 비로소 특허를 받아 침해 소송을 통해 막대한 로열티를 받아내는 것을 말한다. 미국인 제롬 레멜슨은 바코드 스캐닝 기술에 대한 잠수함 특허로 로열티를 무려 15억달러나 받아 유명하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 등이 2000년 공동 출자해 설립한 대표적 특허 괴물 인텔렉추얼벤처스(IV)가 지난해 한국에 진출한 이후 국내 대표기업들에 거액의 로열티를 요구하여 산업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특허 괴물 IV가 한국에서 큰 파장을 일으킨 것은 지식재산 가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우리의 허점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09년 발표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국가 경쟁력 지표 가운데 지식재산권 생산성에서 1위를 기록했다. 지식재산권을 양적으로 창출하는 데는 우수하나 IV와 같은 특허 괴물과 자주 분쟁을 일으키는 것이 증명해 주듯이 우리나라 지식재산권 보호 순위는 33위에 불과하다. 이는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전문인력 부족 등 우리 사회 지식재산 인프라스트럭처가 열악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지식재산권은 이제 더 이상 개별 기업의 사업과 연관된 사유재산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되며, 장기간 다양한 분야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국가적 자원이라는 관점에서 관리되어야 한다.

미국과 일본을 지식재산 강국이라 한다. 이들 국가는 지식재산 분야에 대한 교육과 전문인력 양성을 적극 강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국내 몇몇 대학에 지식재산 관련 학과를 설치하고, 대학원에 지식재산 교과과정을 도입하였으나 대부분 법학대학에 독점적으로 소속되어 현대 융복합시대의 기술 복합성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 못할 것으로 염려된다.

우리나라 고급 인력 집합체인 대학과 정부 출연연구소의 특허 생산성 미흡은 연구 성과 부족이라기보다는 대학의 특허교육과 연구원의 특허관리 역량 부족에 기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대학과 정부 출연연구소는 박사급 연구인력 기준으로 국가 전체 중 85%, 연구개발비 기준으로 24% 가까이 차지하나 이들이 특허출원하는 비중은 9% 수준에 불과하다. 대학의 특허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학부에 관련 과목 개설을 확대하여 지식재산권 창출ㆍ관리ㆍ사업화에 이르는 일련의 전문성을 갖춘 고급 인력을 양성하여 지식재산권과 관련된 국제적 흐름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식재산권 확보와 효율적 관리는 기업과 국가의 국제적 경쟁우위 확보에 필수요소이므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가적 차원의 접근법이 필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지난 7월 '지식재산 강국 실현전략'을 발표하고, 국가 차원에서 지식재산에 관한 지원ㆍ관리 강화를 천명한 정부 정책을 환영한다.

보이지 않는 창의성과 지식재산권이 보이는 제품시장에서 승부를 가른다. 이처럼 미래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지배하는 시대다.

[강태진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공과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