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진
언론속의 강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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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칼럼] 대학교수 평가방식 바꿔야
[매일경제] 인사이드 칼럼 2010.02.09

세기적 콘트랄토 마리안 앤더슨의 '깊은 강'은 언제 들어도 우리 심금을 울린다. 하지만 1930년대 미국에선 인종 차별이 심해 뉴욕 카네기홀 공연을 마친 그녀가 백인 전용 호텔ㆍ식당 이용을 거부당할 정도였다.

인종 차별 철폐에 대한 비전은 마틴 루터 킹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제시해 왔다. 그러나 비전 실현은 1964년 린든 존슨 대통령이 인종 차별을 제도적으로 방지하는 시민권 법안을 통과시키며 사회적 시스템을 정립시킴으로써 가능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미국에 흑인 대통령도 등장했다.

사람들은 자기 권익을 보호받기 위해 제도에 기댄다. 그렇다고 제도가 능사거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느냐 하면,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본질을 왜곡시키기도 한다. 제도와 시스템에서 운영의 묘를 찾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조직 구성원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예로 들어보자. 평가시스템은 조직 구성원의 목표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조직 목표에 부응하는 조직원 행동을 유도해낼 수 있도록 평가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 몇 년 동안 국내 대학들은 대내외적 요구에 부응해 새로운 평가시스템을 도입했다. 특히 대학 교수에 대해 승진이나 정년 보장 등 핵심적인 처우를 결정할 때 평가 결과를 보다 많이 반영하는 추세다.

업적 중심인 평가시스템을 놓고 &"부당하고 불필요하다&"는 반대 견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수의 업적평가시스템은 대학을 보호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최선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연구 실적과 인사, 보상을 연결시켜 제도적 자극을 주면 독립적인 학문연구 주체로서 자칫 자율성이 지나치게 강조될 수 있는 교수들에게 연구활동이라는 중요 사명을 수행하게 하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교수 개인과 대학 전체의 질적 향상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업적평가 기준이나 방안, 관련 규정이 과연 교수 평가에 대한 올바른 척도를 제시하는지, 그리고 평가 결과가 교수 처우에 적절하게 반영되는지 등 문제에서는 여전히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특히 SCI 등재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수를 중요 기준으로 삼는 획일적인 업적평가 방식은 교수들로 하여금 논문 수를 늘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는 결국 연구의 양적인 성장에 비해 질적인 성장이 뒤처지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단적인 예로 2008년 국내 연구자들이 발표한 SCI급 논문 수는 세계 12위 수준이었지만 논문의 질적 수준을 반영하는 지표인 논문 편당 인용된 횟수 순위는 30위에 머물렀다.

또한 전통 엔지니어링 분야 교수들 사이에서는 상대적으로 피인용 횟수가 많고 학문적 저변이 넓은 자연과학이나 생명공학 분야로 선회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엔지니어가 엔지니어링을 하지 않아 기존 학문과 괴리되면서 학문의 영속성이 위협받고 있으며 국내 학계에 학문 편중이 심화되고 있다. 교수의 연구활동은 또한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의 일환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학문 편중 현상은 국가 미래를 책임질 인재의 공급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이처럼 연구업적에 대해 양적 측면만을 강조한 평가는 궁극적으로 당초 목표와 달리 대학의 질적 수준을 저하시키고 나아가 국가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 따라서 향후 평가시스템은 연구의 질적 수준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보완해야 한다. 또 연구활동 외에 교수의 또 다른 주요 책무인 인재 양성은 물론 전문지식을 활용한 자문 같은 사회적 봉사 영역에 대해서도 합당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대학사회는 물론 어느 조직이든 그 조직이 지향해야 할 의미 있는 방향과 목표를 염두에 두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합당한 시스템을 갖추고 제대로 운영해야 할 것이다.

[강태진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공과대학장]

세기적 콘트랄토 마리안 앤더슨의 '깊은 강'은 언제 들어도 우리 심금을 울린다. 하지만 1930년대 미국에선 인종 차별이 심해 뉴욕 카네기홀 공연을 마친 그녀가 백인 전용 호텔ㆍ식당 이용을 거부당할 정도였다.

인종 차별 철폐에 대한 비전은 마틴 루터 킹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끊임없이 제시해 왔다. 그러나 비전 실현은 1964년 린든 존슨 대통령이 인종 차별을 제도적으로 방지하는 시민권 법안을 통과시키며 사회적 시스템을 정립시킴으로써 가능해졌다. 그리고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미국에 흑인 대통령도 등장했다.

사람들은 자기 권익을 보호받기 위해 제도에 기댄다. 그렇다고 제도가 능사거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느냐 하면,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본질을 왜곡시키기도 한다. 제도와 시스템에서 운영의 묘를 찾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조직 구성원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예로 들어보자. 평가시스템은 조직 구성원의 목표와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조직 목표에 부응하는 조직원 행동을 유도해낼 수 있도록 평가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지난 몇 년 동안 국내 대학들은 대내외적 요구에 부응해 새로운 평가시스템을 도입했다. 특히 대학 교수에 대해 승진이나 정년 보장 등 핵심적인 처우를 결정할 때 평가 결과를 보다 많이 반영하는 추세다.

업적 중심인 평가시스템을 놓고 &"부당하고 불필요하다&"는 반대 견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수의 업적평가시스템은 대학을 보호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최선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즉 연구 실적과 인사, 보상을 연결시켜 제도적 자극을 주면 독립적인 학문연구 주체로서 자칫 자율성이 지나치게 강조될 수 있는 교수들에게 연구활동이라는 중요 사명을 수행하게 하는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교수 개인과 대학 전체의 질적 향상을 도모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업적평가 기준이나 방안, 관련 규정이 과연 교수 평가에 대한 올바른 척도를 제시하는지, 그리고 평가 결과가 교수 처우에 적절하게 반영되는지 등 문제에서는 여전히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특히 SCI 등재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 수를 중요 기준으로 삼는 획일적인 업적평가 방식은 교수들로 하여금 논문 수를 늘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는 결국 연구의 양적인 성장에 비해 질적인 성장이 뒤처지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단적인 예로 2008년 국내 연구자들이 발표한 SCI급 논문 수는 세계 12위 수준이었지만 논문의 질적 수준을 반영하는 지표인 논문 편당 인용된 횟수 순위는 30위에 머물렀다.

또한 전통 엔지니어링 분야 교수들 사이에서는 상대적으로 피인용 횟수가 많고 학문적 저변이 넓은 자연과학이나 생명공학 분야로 선회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처럼 엔지니어가 엔지니어링을 하지 않아 기존 학문과 괴리되면서 학문의 영속성이 위협받고 있으며 국내 학계에 학문 편중이 심화되고 있다. 교수의 연구활동은 또한 미래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의 일환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학문 편중 현상은 국가 미래를 책임질 인재의 공급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이처럼 연구업적에 대해 양적 측면만을 강조한 평가는 궁극적으로 당초 목표와 달리 대학의 질적 수준을 저하시키고 나아가 국가경쟁력 약화를 초래한다. 따라서 향후 평가시스템은 연구의 질적 수준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보완해야 한다. 또 연구활동 외에 교수의 또 다른 주요 책무인 인재 양성은 물론 전문지식을 활용한 자문 같은 사회적 봉사 영역에 대해서도 합당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대학사회는 물론 어느 조직이든 그 조직이 지향해야 할 의미 있는 방향과 목표를 염두에 두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합당한 시스템을 갖추고 제대로 운영해야 할 것이다.

[강태진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공과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