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강태진
‘피라미드’ ‘만리장성’ ‘마추피추’ 그리고 우리나라의 ‘수원 화성’. 이들은 유네스코가 세계유산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이들 건축물의 또 다른 공통점은 모두 당대 최고의 공학기술을 적용해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또한 고대 로마제국의 부귀와 영화는 주변 문명보다 탁월했던 공학기술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외부 침입을 막을 수 있는 자연지형이 없는 로마는 방어 목적으로 요새를 축조하고, 성곽 외부의 수원을 성 안으로 끌어들이는 수로를 건설했다. 당시 최고 공학 기술로 건설된 로마 시대의 도로망은 원거리로의 신속한 병력과 물자 보급을 가능케 했고, 거대한 영토에 대한 효율적 통치를 실현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기념비적 세계유산이 아니더라도 인류 생활을 윤택하게 하고 문명의 발전을 유도했던 공학기술을 우리는 도처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바로 공학기술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제는 정부 주도의 중화학공업과 전자산업의 집중적인 육성 정책에 힘입어 개발도상국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여러 나라에 의해 벤치마킹되고 있다. 특히 지난 20년간 급속도로 발전한 우리나라의 IT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다. 이제 세상은 인터넷의 보편화로 인해 과학 기술중심 사회에서 지식 정보중심 사회로 진화되고 있다. 최근 아시아를 뛰어넘어 세계로 진출하고 있는 한류문화의 세계화는 우리나라 경제성장과 IT 기술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 산업의 육성 결과라 할 수 있으며, 우리의 일상 장면을 급속도로 바꿔놓고 있고 최근 촛불집회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 체계에서도 정보기술 발달을 통해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급속히 확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국민소득2만달러, 무역규모 세계13위인 우리나라로 이름만의 OECD 가입국에서 진정한 OECD 선진국으로 발돋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상당한 진입 장벽을 경험하고 있다. 비록 자동차ㆍ조선ㆍ반도체ㆍ이동통신 등에서 세계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국가경쟁력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서는 새로운 산업의 육성이 절실한 상태다. 이처럼 시대조류에 따라 각광받는 분야의 부침이 계속되므로 기존의 경쟁력을 가진 산업분야뿐 아니라 바이오, 환경, 에너지 산업의 육성을 위한 시대의 변천을 따르는 공학교육의 변화가 필요하다.
이처럼 지식정보 사회로의 진화가 현실화될수록 공학 기술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는 것이 지금까지의 추세다. 콘텐츠 산업의 핵심인 인간의 감성을 움직이기 위한 방법으로 첨단 공학기술이 더욱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인간과 감성을 교류하는 로봇, 새로운 개념의 인간 친화적 모바일 기기, 그리고 악기나 비디오아트와 같은 예술품에 이르기까지 최첨단 과학 기술이 더욱 필요해진 것이다. 또한 최근에 대두되는 저탄소 녹색 에너지의 개발은 한 학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기, 기계 화공 등 여러 관련학문이 종합적으로 필요한 분야이다. 공학은 인류학이나 심리학과 같은 인문사회과학, 음악ㆍ미술과 같은 예술 등 다양한 분야와 융합하여 새로운 아이디어와 상품으로 개발되고 이것이 새로운 블루오션을 창출하여 앞으로도 한국을 먹여 살릴 효자 노릇을 할 것이다.
의학과 컴퓨터공학 등과 같은 첨단 과학이 어우러지는 생명공학, 인지과학 등과 공학과 예술이 만나 이루어지는 미디어아트 등이 이를 반영하며 이러한 통섭을 위해서는 전통적 과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즉 기본에 충실한 교육을 통해 양성된 기초가 튼튼한 과학자가 융합기술 탄생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분야에 관계 없이 공통적인 기초 과학지식이 필요한 것은 불문가지다. 뿌리가 깊어야 높고 넓게 가지를 뻗고, 다른 나무와의 접목도 가능하다. 공학의 기본학문이 공학의 core로 중요성이 더해지며 핵심기초를 튼튼히 하는 공학교육의 혁신이 필요하다. 또한 융합 대상인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다른 분야 전문가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열린 사고와 다른 분야의 언어에 대한 학습능력, 자기 분야를 다른 분야 종사자의 눈높이에 맞게 이해시킬 수 있는 소통능력 등이 필요하다.
기술융합 및 학제적 연구능력과 더불어 앞으로 공과 대학 졸업생들의 활약무대가 전 세계로 확장되는 상황에서 졸업생들의 글로벌 교육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과거 우리나라의 산업 성장을 주도했던 대량 제조업 중심의 산업형태에서 벗어나 21세기 기술혁신의 원천을 확대하고 성장 잠재력 확충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술융합 분야, 학문 분야간 소통 활성화를 통해 글로벌 차원의 연구협력 조직을 만들고 이들에 대한 법적ㆍ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MIT 등 한국의 우수 학생을 교육시키는 미국 대학에서 항상 나오는 얘기가 진학 후 학생들이 커뮤니케이션 능력 습득에 1년 이상을 허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미 20년 전 글로벌 엔지니어 양성을 위해 정부가 도쿄대 공대, 학부 등에 직접 투자해 학생들에게 영어 등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비롯해 비즈니스 프레젠테이션 등을 전문적으로 제공하고 있고 미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엔지니어 부족 현상에 대한 대책을 미래의 국가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정부와 민간이 함께 세우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까지도 우수한 글로벌 엔지니어 양성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글로벌엔지니어 양성을 위하여는 국제학술회의, 워크숍, 연구, 강의 등의 인프라와 영어 커뮤니케이션 스킬, 테크니컬 프레젠테이션, 협상기술 등 글로벌비지니스에 필요한 모든 실전 기술 교육이 필요하다.
세계적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현재의 한국 교육으로는 미래가 없음을 경고했다. 다양성의 수용 없이 정형화한 지식을 암기하는 교육은 기계부품처럼 일하던 산업화 시대에나 적당하다. 현재의 교육방식을 개혁하지 않는다면 10~20년 후에는 우리 아이들이 문제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는 선진국이 해놓은 성과를 본뜨기 위한 이해력만 있으면 됐으나,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깊은 지식을 바탕으로 스스로 새로운 것을 만드는 창의성이 필요하다. 대한민국의 미래에 위기가 닥친 지금이 바로 공학교육을 과감하게 혁신해야 할 때다. 현재의 교육은 아직도 획일적인 대량생산을 하던 산업화 시대에 맞추어져 있다. 앞으로 다가올 지식기반 산업시대에는 산업체의 기술수요가 다양화되고 공학과 예술의 결합과 같은 융합 기술과 금융공학 등 새로운 전문분야의 수요 발생 등으로 인하여 현재의 교육방식을 개혁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학생들이 미래의 산업 현장에서 적응할 수가 없다.
정부는 이러한 미래 사회의 변화에 부응할 수 있는 미래형 공학인력 양성을 위해 선도적이며 실험적인 연구 교육시설을 공과대학에 구축하고 국제표준을 선도하는 지식집약형 지도자급 엔지니어를 양성하는데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할 것이다. 또한 산업계는 교육계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와 밀접한 상호의견 교환을 통해 교육방향의 지속적 보정과 인력양성, 그리고 기술개발의 선순환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정부와 산업계 그리고 교육 현장에서 다각적인 노력을 할 때만이 성공적인 공학교육 혁신으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