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진
언론속의 강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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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진단] `과학 백년대계` 를 세우라
[매일경제] 사설 2009.06.23

춘추전국시대 제나라 사람인 안영이 초나라에 갔을 때 초왕이 창피를 줄 속셈으로 제나라 출신 죄인을 끌고 와 심문하면서 안영에게 "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하오&"라고 물었다. 이에 안영은 "강남에 귤이 있는데 그것을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되고 마는 것은 토질 때문입니다. 제나라 사람이 제나라에 있을 때는 원래 도둑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는데, 초나라에 와서 도둑질한 것을 보면 초나라 풍토 때문인 줄 압니다"라고 대답했다.

식물에 풍토가 중요하듯 사람에게는 사회제도와 환경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제도를 어떻게 정비하느냐에 따라 국민 의식구조와 행동을 결정짓는 중요한 인자가 된다.

이공계와 인문사회계의 연구관리 기능을 통합한 국내 최대 연구관리 전문기관인 `한국연구재단`이 오는 26일 출범한다. 한국과학재단, 한국학술진흥재단, 국제과학기술협력재단 등 3개 연구지원기관이 통합해 단일 기관으로 재정립돼 한국연구재단으로 발족하는 것이다. 새로운 통합재단이 우리나라 인문사회 분야와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새로운 전문 연구지원기관으로 본격 활동하게 되면 향후 연구지원과 미래 융ㆍ복합 연구 등에 획기적인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다.

올해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한국 과학경쟁력을 세계 3위로 평가했다. 이는 정부가 과학기술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한 결과로 2007년에는 연구개발 투자액 규모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3.47%에 이르렀으며 비율로는 세계 5위, 절대 금액으로도 7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술경쟁력은 이보다 뒤떨어진 14위에 머물러 우리에게는 응용기술 등으로 파급효과가 큰 창의적 기초원천연구가 아직 부족함을 시사한다.

선진국과 무한경쟁을 벌여 우위를 차지하며 지속적인 국가 발전을 이루려면 자생력이 있는 기초원천연구와 여기에서 파생되는 응용기술이 필요하다. 정부는 2012년까지 연구개발 투자액을 5%로 늘려 양적으로는 물론이고 질적으로도 세계 최고 연구개발투자 환경을 만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올해 예산 규모가 2조7000억원인 통합재단 발족은 학문 간 상생과 통섭을 이끌어 미래 융ㆍ복합 연구를 위한 기틀을 만들고 연구관리시스템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통합한 연구재단에서 눈에 띄는 가장 큰 변화는 전문가 그룹을 활용한 연구관리전문가(PM) 제도 도입이다. PM제도는 미국이나 일본이 시행하고 있는 연구사정관(PO)과 유사한 제도로 연구관리 전문가들이 자율적 권한을 가지고 과제에 대한 기획에서부터 선정, 관리, 평가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진행ㆍ감독하게 된다.

한국연구재단은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전 분야에서 신뢰성을 검증받은 민간전문가를 통해 미래 사회 변동 추세에 부응하는 연구방향을 설정하고 연구개발 투자에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연구비 집행의 투명성을 확보해 공정하게 사업 운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통합 연구재단 출범으로 개입이 최소화된 정부의 막대한 지원과 제도 선진화를 위한 기틀이 갖추어진 지금, 이루어져야 할 것은 바로 연구자 의식구조 변화다.

미래는 생각의 연장이며 상상의 실현이다. 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고사성어를 교훈으로 삼아 탱자를 귤로 바꾸는 개혁을 통해 우리 미래를 설계해야 할 것이다.

새로 출범하는 연구재단이 미래지향적 연구지원이라는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연구자는 물론 전 국민에게 깊은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재단의 노력과 더불어 연구자 개개인의 분발과 정부의 연구개발 투자가 선순환 구조를 이루면 미래 신성장동력을 창출해 풍요로운 대한민국 국가경제를 뒷받침하는 과학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강태진 서울대 공대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