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진
언론속의 강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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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시평] 자유와 창의성이 필요한 사회
[매일경제] 2008.05.12

컴퓨터 앞에 앉아 `구글 어스`를 치면 자신이 사는 동네는 물론 두바이의 초호화 호텔 공사 진행 상황도 살펴볼 수 있다. 밤하늘 별자리도 `구글 스카이`를 통해 서울에서 볼 수 있다.

세계 최대 인터넷 검색 회사인 구글에는 20% 여유 규정이 있다. 구글 직원들에게 근무시간 중 20%를 회사 업무가 아닌 개인 프로젝트에 할애하도록 의무화한 규정이다. 일주일 중 하루를 자유와 창의성에 투자한 결과 구글 스카이 등 핵심 서비스가 탄생할 수 있었다.

구글보다 앞서 3M에서는 15% 여유 규정을 적용했다. 이는 직원들에게 재충전과 창의력을 불러일으켰고, 그 대표적인 결과로 스카치테이프와 포스트잇이 탄생하였다. 1935년 미국 듀폰사 연구원이었던 월래스 캐로더스는 인류 최초 합성섬유인 강철보다 강인하고 실크보다 부드러운 나일론을 발명하였다. 이도 연구자에게 특정 항목에 대해 개발 부담을 지우지 않고 틀에 박힌 업무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 결과였다.

최근 알 막툼 두바이 총리는 그의 상상력과 통찰력으로 바다 속 인공 섬인 `팜 아일랜드`와 각종 물류ㆍ관광시설에 대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아 전 세계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사막의 기적을 일구어 내고 있다.

이런 세계적 흐름 속에서 교육과학기술부의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학교에 자율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교과부 명분에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입시 위주 교육 현실 속에서 방과 후 보충수업 허용이나 전 과목 우열반을 두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기대할 만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주지하듯이 한국 사회의 교육에 대한 열정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부존자원이 전무한 한국이 현재와 같은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뜨거운 교육열에 기인한 바 크다.

문제는 20세기 산업화 시대 대량생산 방식에 맞추어진 교육방식이다. 이는 세계화, 탈대량화, 다양화로 정의되는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는 더 이상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나라 교육은 창의적 방법으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중시하기 보다는 정량화한 정답을 실수 없이 찾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선 창의성이 설 자리가 없다.

어떻게 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 관점에 따라 정답이 달라질 수 있는 문제들을 제시함으로써 학생들이 자신만의 생각을 가다듬고 계발하게 하며 교육에 흥미를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계적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현재의 한국 교육으로는 미래가 없음을 경고했다. 다양성의 수용 없이 정형화한 지식을 암기하는 교육은 기계 부품처럼 일하던 산업화 시대에나 적당하다. 현재의 교육방식을 개혁하지 않는다면 10~20년 후에는 우리 아이들이 문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0~20년 후 미래를 언급할 필요도 없다. 중ㆍ고등학교 시절에는 입시 걱정, 대학에서는 취업 공부에 매달려 자기 적성과 능력을 고민해 볼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요즘 젊은이들은 이미 인생의 좌표를 잃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요즘 신입사원들의 정신적 성숙도가 낮고 직장 적응력이 떨어지며, 이직률도 높은 이유가 그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선진국이 해놓은 성과를 본뜨기 위한 이해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다양하고 깊은 지식을 바탕으로 스스로 새로운 것을 만드는 창의성이 필요하다.

이제라도 우리 청소년들에게 여유를 주어야 한다. 새벽부터 심야까지 계속되는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험을 쌓고 문제의식을 키우며 스스로 문제해결 방법을 찾아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천천히 서두르는 것, 이것이 진정 대한민국이 빨리 발전할 수 있는 길이다.

[강태진 서울대 공과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