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진
언론속의 강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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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정부, 대학, 기업의 공학교육 협력
[문화일보] 2008.02.02

수년 전, 대중예술인 한 사람이 벌어들이는 수익이 자동차 수천 대를 팔아서 거두는 이익에 못지않다는 얘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는 적절치 않은 비교다. 수천 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며 유발하는 고용효과나 파생 산업의 효과를 무시한 것이다. 자동차 수천 대를 생산, 수출하면 수천 가구가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내총생산(GDP)의 대외의존도는 80%가 넘으며, 그 상당 부분은 여전히 반도체·자동차·선박을 포함한 제조업의 산물이다. 그것도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들이다. 이처럼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을 생산하고 세계 기술을 선도할 수 있는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지난 30여년간 최고 수준의 인재들이 공과대학에 진학했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우수한 공학 인재를 세계 수준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장비·시설 등의 교육 인프라가 필수적이다. 가령, 시장의 논리로만 접근해 공과대학 교육 시설에 대한 투자를 산업계에 맡긴다면, 연구와 교육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기업이 단기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교육 시설에 투자하는 것은 적극적인 개념의 투자라기보다는 오히려 기부에 가깝다. 이에 관해서는 미국 경제학자 폴 로머도 “이공계 인력의 육성은 시장원리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중요하다”며 이공계 인력 양성을 위한 투자를 기업에만 맡길 수 없음을 피력한 바 있다.

우리나라 공과대학은 1990년대 초까지 지속된 세계은행(IBRD) 차관에 의한 교육기자재 지원 사업이 종료된 이후, 실험실습 교육기자재 확충은 교육부 사업으로 다른 일반 대학과 똑같이 추진됐다. 우리의 공학교육 환경은 점차 열악해지고, 이러한 환경에서 배출된 공과대학 졸업생들은 세계화된 지식기반 사회에서 활약하기에 역부족이다.

그런데 공과대학 졸업생이 산업체에 취업했을 때, 과다한 재교육이 필요하다는 기업들의 불만이 많다. 현재의 학사관리 구조는 이러한 능력을 갖춘 인재를 배출하기에 너무 느슨하여 학생들이 집중훈련을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4년 만에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이 많지 않아 대학 4학년생이 입학정원의 몇 배나 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따라서 대학에서도 주어진 기간에 글로벌 공학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서는 학사관리 등의 교육제도를 통해 엄격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공과대학은 산업 현장이 아니며, 취업 기술학원은 더욱 아니다. 특별한 산업체의 사양에 맞추는 맞춤형 교육을 모든 공과대학에 적용, 일반화할 수는 없다. 공과대학에서 이뤄지는 공학교육은 졸업생이 어떤 산업 현장에 투입되더라도 해당 현장의 재교육을 단기간에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는 예비 엔지니어(pre-engineer)로서의 능력을 함양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변화하는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고,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의 창출을 위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제 정부는 공학교육 인프라에 투자하고, 대학은 우수한 인재 양성에 정진하며, 산업계는 그 인재를 통해 경쟁력을 키워 다시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미국의 1999년 ‘21세기의 기술과 직업’ 보고서는 기업이 시설투자를 10% 늘렸을 때 생산성은 3% 증가에 그쳤으나, 인재의 교육·훈련에 투자한 경우 8.4%의 증대 효과가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의 첫 단추는 정부의 교육에 대한 투자다. 현대를 융합의 시대라고 한다. 공학교육에의 투자는 공학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상상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는 면에서 공학은 ‘엔에이블러(Enabler) 학문’이라 불릴 수 있다. 새처럼 날고 싶었던 꿈을 이룰 수 있었고, 멀리 있는 그리운 사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이제 얼굴까지도 볼 수 있다. 음악과 공학의 결합이 피아노를 탄생시켰고, 컴퓨터는 현대음악뿐만 아니라 영화산업에도 절대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미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백남준 씨의 비디오아트에서도 볼 수 있듯이, 비디오아트도 공학의 뒷받침 없이는 발전할 수 없다. 이렇듯 공학이 다양한 분야와 융합하여 새로운 아이디어와 상품으로 개발되면, 이것이 새로운 블루오션을 창출, 10년 뒤 대한민국을 먹여살리는 효자 노릇을 할 것이다.

세계화는 시대가 요구하는 대명제이며, 교육도 예외일 수는 없다. 무한경쟁과 무한협력을 위해 공학교육의 내용도 세계화돼야 함은 물론 초일류 교육시설도 확보해야 한다. 정부의 공학교육에 대한 투자 의지가 없고 최고의 인재들이 공학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면 10년 후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두울 뿐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장래 희망으로 선호하는 분야들이 어떤 것들이며, 과연 이들 분야에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길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면, 왜 정부가 지금 공학교육에 투자해야 하는지는 자명해진다.

[[강태진 / 서울대 공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