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진
언론속의 강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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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시평] 장기투자 전략 필요한 녹색성장
[국민일보]2008.10.05

지구는 태양열의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를 받아들인다. 과학자들은 이런 지구를 큰 우주선에 비유한다. 이 우주선은 태양의 에너지를 흡수하여 동식물을 자라게 하고 다양한 기상현상을 발생시키며 엄청난 양의 자원을 공급한다.

우주선 크기가 너무 크기 때문에 우주선에 남아 있는 자원이 유한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무한정 공급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동안 인류 역사에서 이런 착각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1800년께 10억명이던 세계 인구는 현재 67억명에 달하고, 2050년에는 100억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우리는 이 우주선이 가라앉지 않을까 걱정하며 생존 방법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다.

인구가 많지 않았던 과거에는 자연에서 에너지를 활용해 생존했다. 산업혁명 이후 보급된 열기관과 전기는 우리의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으나 에너지 소비량을 급증시켰다. 쉬운 예로 자동차 엔진은 최소한 말 100마리 정도의 힘을 낼 수 있으니 자동차당 인구 수가 3명에 달하는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개인이 33마리의 말을 부리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과연 이러한 호사가 언제까지 가능할까.

현재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의 화두는 지속가능성이다. 유럽은 오래 전부터 이를 체계적으로 준비해 왔으며, 덴마크는 2007년에 발전량의 20%를, 스페인은 10%를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풍력으로 조달하였다. 아직 단가가 비싸서 보급이 느린 태양광 발전은 현재 총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미미하지만, 독일 같은 경우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2006년 83만㎾, 2007년에는 원자력발전소 1기 발전량에 버금가는 110만㎾의 태양광 발전시설을 증설하였다. 유럽은 2020년까지 전체 발전량의 21%를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려는 야심찬 목표를 갖고 있다.

최근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 전략을 들고 나온 것은 선진국의 추세와 세계 9위 이산화탄소 배출국인 우리나라의 상황을 고려할 때 미래를 위한 필연적 선택이라 할 수 있다. 녹색성장의 중요한 축인 신재생에너지는 선진국보다 늦기는 하지만 우리도 2012년에는 에너지소비의 5%를 이로써 조달하려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태양광, 풍력, 수력 등 신재생에너지 자원이 매우 부족하고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로 연구개발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또 신재생에너지는 특성상 발전량이 불규칙해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할 수 없다. 밤, 가뭄, 무풍 등에 속수무책이다. 한마디로 신재생에너지는 높은 발전 단가와 공급의 불안정성으로 본질적으로 에너지 수요의 일부만을 충당할 수 있는 불완전한 대안일 뿐이다.

어렵지만 가장 확실한 대비책은 고효율 에너지 사회를 구축해 에너지 소모량을 감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 소비가 적은 새로운 산업 육성과 유치를 위해 노력해야 하며, 산업현장에서의 에너지 효율 증진을 위한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에너지 과소비형 소비구조와 행태도 변화되어야 한다. 전체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주택, 건축, 교통 분야가 녹색전략이 필요한 대표적 소비생활 분야다.

지난 20여 년간 생산단위당 에너지 소비량을 지속적으로 감축시켜온 선진국들과 달리 우리나라의 에너지 소비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영국과 일본처럼 환경을 위하는 시민의식을 제고하도록 정부가 사회 각계각층과 소통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나아가 이를 뒷받침하는 적극적인 공공정책은 필수다.

동시에 신재생에너지와 같은 녹색기술의 연구개발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에너지 확보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에너지 수입률이 96%에 이르는 우리나라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1%라도 자급할 수 있는 에너지원 확보가 절실하다.

또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공장이나 건설현장과는 달리 환경은 천천히 반응한다는 것이다. 녹색성장 전략은 10년 이상 앞을 내다보는 장기투자 전략으로 인내하고 절제하지 않으면 결코 힘을 받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준비는 우리의 생존을 위해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강태진 서울대 공과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