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진
언론속의 강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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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시평] 복합을 넘어 융합으로
[국민일보]2008.08.26

미래는 융합의 시대다. 동ㆍ서양의 음식이 융합되고, 재즈와 국악이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고, 휴대폰에 인터넷 기능이 접속되는 등 각 분야에서 융합 현상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컨버전스, 하이브리드, 퓨전, 크로스오버 등 융ㆍ복합을 의미하는 용어들이 과학기술을 비롯해 문화예술이나 사회과학에서도 보편화되고 있다.

기술 융합의 의미로 주로 사용되는 `컨버전스`의 사전적 정의는 한 곳으로의 집합ㆍ통합이란 의미로 통용된다. 하지만 진정한 융합은 단순한 통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별 독립기술들이 고유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전체적 성능이나 기능을 향상시키는 것은 기술의 복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융합기술은 두 가지 이상 기술이 물리적 혼합이 아닌 화학적 결합을 통하여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는 새로운 형태의 기술로 사회ㆍ문화 패러다임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 통섭적 의미까지 내포한다.

인터넷은 당초 PC와 통신의 결합이란 하드웨어적 결합으로 시작됐으나 엄청난 소프트웨어적인 변화를 낳았다. 오늘날 사회ㆍ경제는 물론 문화ㆍ정치마저 변화시키기에 이르렀다. 자동차는 과거 기계공학 분야 전유물이었다. 이제 자동차는 기계공학, 전자공학, 재료공학과 디자인 분야의 공유물이며 장래에는 친환경기술, 인간친화기술 등이 자동차공학의 핵심이 될 것이다. 그 밖에 첨단과학기술을 건설토목 분야에 접목한 인텔리전트빌딩과 스마트하이웨이, 금융과 공학이 만난 금융공학 등은 이미 가시화된 융합기술들이다.

복합기술은 복제품 출현을 방지하기 어렵지만, 고도의 융합기술은 복제가 불가능하다. 또 복합은 전문화와 분업만으로 가능하지만, 융합은 한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 대한 폭넓은 경험과 이해가 있어야 가능하다.

한국이 자랑하는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 씨는 그의 작품이 한국의 `비빔밥문화`에서 비롯됐다고 해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그의 말대로 한국이 저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재료가 어우러져서 새로운 맛을 내는 비빔밥문화 속에 이미 우리 융합기술의 가능성이 자리잡고 있었던 듯 싶다.

그렇다면 미래 성장동력이라는 융합기술을 이끌어 갈 우리의 전문가 양성 및 전략은 어떻게 변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현 시대의 융합의 핵심은 이성과 감성, 빠름과 느림, 실용과 가치, 능력과 도덕성의 조화라 생각한다. 의학과 컴퓨터공학 등과 같은 첨단과학이 어우러지는 생명공학, 인지과학 등과 공학과 예술이 만나 이루어지는 미디어아트 등이 이를 반영한다. 이러한 통섭을 위해서는 전통적 과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즉 기본에 충실한 교육을 통해 양성된 기초가 튼튼한 과학자가 융합기술 탄생의 전제조건이라 할 수 있다. 분야에 관계 없이 공통적인 기초 과학지식이 필요한 것은 불문가지다. 뿌리가 깊어야 높고 넓게 가지를 뻗고, 다른 나무와의 접목도 가능하다.

그 다음으로는 융합 대상인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다른 분야 전문가들과 소통할 수 있는 열린 사고와 다른 분야의 언어에 대한 학습능력, 자기 분야를 다른 분야 종사자의 눈높이에 맞게 이해시킬 수 있는 소통능력 등이 필요조건 중 하나다.

결과적으로 우리에게는 미래의 융합과학도 양성을 위해 기초를 견고하게 교육함과 동시에 타 분야에 대한 이해의 기회를 더 넓게 제공해야 하는 쉽지 않은 사명이 주어졌다. 넓고 깊게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은 교육의 공급자인 교수에게도 어려운 일이지만, 수요자인 학생에게는 더욱 어려운 일이다. 사회의 적극적 관심과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진다면 과학에 관심이 큰 청소년들은 이 길에 기꺼이 그들의 인생을 걸 것이다. 이들로 인해 우리의 비빔밥문화가 융합시대를 이끌어 나가게 될 것이다.

[강태진 서울대 공과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