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강태진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교육비는 세계 3위, GDP 대비 사교육비는 단독 1위, 특히 연간 16조원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교육비 액수, 바로 200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발표 한국의 교육 성적표다.
경제부문에서 앞서가는 선진 공업국들이 30개 OECD 회원국들 중 대부분인 점에서 공교육에 대한 투자에 비해 사교육 투자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
지난 한 해 동안 대한민국의 모든 가정과 기업이 생산했던 노동과 상품을 다 합친 GDP는 국내에서 생산된 모든 것을 일컫는 통계인 만큼 GDP에서 1%의 비율이란 실로 어마어마한 수치다.
국방비와 비교해 보면 휴전상태에서 북한과 50여 년 이상을 대치중인 한국은 2005년 GDP 대비 국방비는 2.5%, 세계 통치에 엄청난 공을 들이고 있는 미국의 GDP 대비 국방비는 3.5% 정도다.
그런데 한국의 GDP 대비 사교육비 비율은 2.9%로 수치만으로도 우리나라 국방비를 능가한다.
그렇다면 이런 수치에 걸맞게 한국 교육 실상 또한 그렇게 질적으로 높은 수준이란 말인가? 사교육비의 상당수를 차지할 것으로 추정되는 영어 교육은 외관상으로 드러난 지표는 암울하기까지 하다.
토플 시험을 주관하는 ETS에 따르면 지난 2003년부터 1년간 토플시험에응시한 한국 사람은 모두 8만5000여 명으로 전세계 180여 개 나라 가운데 단독 1위. 국가당 평균 응시자 수가 2295명이었다.
이는 웬만한 국가의 토플 응시자보다 40여 배나 많고, 전세계 토플 응시자 100명 가운데 16명이 한국인이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정작 한국 사람들의 평균 토플 성적은 고작 71%인 213점으로, 148개국 가운데 103위에 불과했다.
영어권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동아시아의 문화적ㆍ역사적 한계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는 너무나 열등한 점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상대적으로 친숙할 수밖에 없는 한자를 보자. 지난 2003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한 조사에 의하면 중학생은 100점 만점에 평균 45점, 고교생은 52점의 한자 실력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회, 신문, 민족 등과 같은 생활 한자를 쓰지 못하는 기초학력 미달자는 각각 37.4%와 33.6%에 달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2002년 한국교육개발원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국어ㆍ문서 해독 능력은 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8월 KBS가 실시한 신입사원 채용 시험은 한국의 교육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준 또 다른 예가 된다.
십수 명 모집에 무려 지원자가 1만6500여 명 몰린 이 시험에서 KBS는 처음으로 한국어능력 시험을 도입했는데 낙제 점수를 받은 지원자가 무려 50%에 육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KBS의 한 한국어 팀장은 &"방송사에 우수한 인력이 몰리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 같은 결과는 심각하다 못해 충격적이기까지 하다&"고 밝히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깊게 반성해 봐야 할 시점이다.
한때 세계 최고의 교육열로 뭇나라들의 시샘을 한몸에 받던 한국의 교육 수준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단 말인가? 가난한 고학생이 독학으로 명문대에 입학하고, 학교 수업에 충실해도 얼마든지 대학 진학이 가능했던 나라. 출신 지역보다는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목표를 이룰 수 있었던 나라. 소 한 마리 팔면 자식을 대학에 보낼 수 있었던 교육 강국 대한민국은 이미 과거 속 신화가 된 것인가. 엄청난 사교육비를 치르고,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받아도 지적인 수준은 오히려 떨어지고, 4년제 대학을 나와도 마땅히 갈 곳조차 없는 교육 현실은 대한민국 미래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미국인 중 19%는 자신이 상위 1%에 속한다고 믿고 있으며, 또 다른 19%는 일생 동안 상위 1%에 들어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 같은 긍정적인 사고는 건전하고 단단한 교육에 기초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교육이란 바로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 그 자체여야 한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지금 무얼 준비하고 있는 건가. 젊은이들에게 가능성 있는 미래가 아니라 암울함만을 던져주는 것은 아닌지, 교육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
[강태진 서울대 공대 교수]